들어가기에 앞서
결론부터 시작하는 '파랗고 아름다운 감옥' 챕터.

제가 최근에 알아낸 바를 여러모로 조합한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인류는 난민입니다.'
위 결과를 도출하기까지 제가 겪은 의문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왜 우리가 '알고있는 신'은 지구만 만들었는가?
2. 왜 우리는 신체를 창조한 것에 '창조주'의 명분을 두는가.
그렇다면 영(靈)이란 신체와 동시에 창조되는 것인가?
3. 그러나 전통적으로 모든 문화권에선 '사후세계'를 다루고 있다.
4. 생전의 죄를 벌받는 곳이 존재한다면,
사후에도 그 영(靈)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모든 문화권에서 인정하는 사실이라 볼 수 있다.
5. 근데 만약 영(靈)이 신체의 창조와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사후 세계라는 곳에는 영(靈)이 계속 가득 들어차기만 하는가?
사후세계란 '쓰레기 소각로'에 불과한가?
6. 그러나 우리는 죄지은 만큼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다고 누누히 '교육'받는다.
그렇다는 것은 유대교에서도 영(靈)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했다고 볼 수 있다.
(유대교를 비롯해 거의 모든 종교의 공통사항이다.)
7. 5번에서 다룬 것의 모순, '영'이 끊임없이 생산되는 구조라면,
찰나의 삶(테스트)을 통해 천국과 지옥으로 보낸다는 그 개념이 대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영'이 생산되는 개념이라면 이 부분에서 막힌다. 도대체 '영'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찰나의 테스트를 거쳐 불구덩이로 보내던지 천국으로 보내 신과 함께하는 것인데,
천국으로 간 영들은 신과 함께 또 테스트장에서 누가 잘났고 못났는지를 또 봐야한다.
커다란 목표가 없이 테스트장만이 최종목표가 되는 것인데,
영이 원래 그렇게나 한정적인 장소에 필요한 소모적인 존재라면
대체 왜 '생산'을 하는 것인가? 이 우주가 얼마나 넓은데 말이다.
8.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윤회' 개념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영이란 신체와 동시에 '생산'된 것이 아니라,
생산이 완료된 신체를 입고 지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9. 우리에겐 '전생(前生)'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닌가?
10. 그러나 '전생'에 대해서 우리는 기억하는 바가 없다.
우리의 전생이란 지구에서 있었던 모든 일이었는가?
11. 9번에 따라 우리에게 전생이 있었다면 그건 그저 지구에서의 일만으로 제한될 수 있는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떻게 지구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12. 왜 우리는 '전쟁'을 계획하는가? 상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럼 영(靈)은 어떻게 죽일 수 있는가? 물리적인 형태가 없는 영(靈)을 말이다.
13. 물리적인 형태가 없는 영(靈)을 소멸시키는 강력한 방법은 없어보인다.
이는 사후세계,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에서 알 수 있듯 영(靈)은 사후에도 계속 존재한다.
따라서 영의 소멸은 타의에 의해서 이뤄지기 어려워 보인다.
14. 소멸되지 않는 영(靈)들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이 뭘까?
소멸시킬 수 없다면 기능을 정지하게 해야한다. 따라서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애고 정체성을 잃게 하여 본래 그들이 수행하던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15. 우리 모두가 전생에 대한 기억이 없이,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은,
어찌보면 13번에서 논한 영에 대한 형벌을 받은, 일종의 '수감인' 신분이라는 것 아닌가?
16. 그렇다면 인류에게 주어진 '원죄'라는,
다분히 기독교적인 원죄 개념이란 어찌보면 15번을 방증하는 것이 아닌가?
애초에 전산상에서 죄수 신분으로 들어온 곳이니 당연히 수용소처럼 죄인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
17. 유대교를 비롯해 각종 아브라함계 종교에서 나타나는 특징,
기도할 때 항상 보잘것 없는 저를 보살펴달라고 간청한다는 점이다.
왜 이런 고압적인 주종관계를 강조하는가? 15번이 맞는것인가?
우리가 기도를 올리는 그 '신'은 지구라는 수용소의 장(長)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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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써놓고 보니 복잡해보이네요.
앞으로 설명할 것에 대한 기본 개념으로서 제시한 의문점들이니 참고정도만 해주셔도 되겠습니다.
백발의 노인
우리는 그를 창조주라고 부르고 있다
여러 미디어 매체를 살펴보면, '백발의 노인'이라는 키워드가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모든 것을 전부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에 있어 '전지전능'한 단 하나의 유일신이라는 아이콘으로 존재합니다.어째서 '유일신'이란 우리에게 이런 모습으로 등장할까요?

주님(God), 우리의 아버지 - 치마 다 코넬리아노(Cima da Conegliano), 1515.

아담의 창조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512.
이런 모습의 영향인지, 우리는 백발의 지긋한 연세의 어르신을 보게 되면 그가 분명 '지혜로울 것'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전래동화나 혹은 옛 설화들, 장소와 시대를 불문하고 이런 백발의 노인의 모습을 수 많은 문화권에서 신성시 여기고 있습니다.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많은 경험을 가진, 지혜로운 인물이라는 해석에 대해 공통점을 가지는 것이죠.

영화 매트릭스 작중 가상의 세계를 설계하고 창조했다는 캐릭터, 아키텍트(Architect)


현자이자 '마법'이라는 불가사의한 기술을 아주 갖고 노는 캐릭터인 대마법사, Great Wizard의 수렴하는 이미지. 멀린(Merlin) 전승에 따라 나타나는 '백발의 노인'이다. 이로 인해 파생된 캐릭터는 수없이 많다.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 해리포터 시리즈의 덤블도어 교장이 대표적이다.

이런 특징을 매우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숨은 비밀 동화, 피노키오. 사람의 모습을 한 인형을 만들어낸 창조자가 왜 백발의 노인인지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전지전능'한 유일신, YHWH.
그 백발의 노인에게 선택받은 것은 누구였습니까? 어떤 민족이었으며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그리고 그 '선택받은' 민족은 어째서 1950년대부터 일체의 연대관계를 부정하고 모든 Managers를 탄압하기 시작했을까요?
그리고 왜 '백두(白頭)혈통'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백발의 노인을 심볼리즘화한 단어가 북한의 지배층의 정당화를 위해 사용되고 있는 걸까요?
진짜 창조주의 모습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위의 단락에서 저는 현재 성경과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당연시여기는 '백발의 노인'과 YHWH에 대한 해석에 의문을 던졌습니다.
'백발의 남성 노인'의 모습은 확실하게도 유대민족에서 신성시하는 '창조주'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왜 우리는 이런 '백발의 노인'의 창조주를 너무도 당연시하고 있는 걸까요?
이런 아이콘적인 창조주의 모습은 사실 유대신화에서 비롯된 것이고, 우리의 신체를 흙(물질)으로 빚어냈다는 기존 성경의 해석조차 유대신화의 골렘(Golaem), 즉 흙으로 빚어낸 기계덩어리의 탄생설화와 매우 유사합니다.
'진리'라는 Aemaeth가 적힌 종이가 이마에 붙어있다면 그 골렘이라는 흙으로 만들어진 기계는 움직입니다. 그러나 Aemaeth에서 Ae를 지운 Maeth(죽음)만을 남겨두면 그 골렘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죠.
즉 '흙'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인류의 그 몸을 '골렘'과 동일시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우리가 종이 한장에 움직이고 말고가 결정되는 존재라...
모든 몸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정체불명의 숙어가 갑자기 머리를 맴도는 군요. (화장이 장례의 기본이 되어가는 지금 시대에 반도에서 그 숙어의 의미가 더 이상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창조주라고 하는 백발의 노인의 모습을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심리 전반에 깔아두고 있습니다.
유대민족의 신화에 등장했던 창조주의 모습과, 우리의 탄생의 신비 또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중이죠.
이상한 일 아닙니까?
제수이트를 비롯해, 남성의 노인을 모시는 온갖 기독교 단체의 만행들을 보는 와중에 우리는 그들이 왜 이런 남성 노인을 모시는지 의문을 가져본적이 그다지 없습니다.
왜 그들의 말단 조무래기 사원들의 작전들과 행동에는 경악하면서, 그들의 전체적인 '구조'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었을까요?
대체 왜 서구권과 중동, 남미를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유대인의 사막 신화'가 대세를 갖게 된 겁니까?
유대자본과 유대인들의 그 행태에 대해서 우리는 '악하다'고 느끼고 있으면서도 이런 유대신화에 기반을 잡은 '기독교' 그 자체에는 의문을 품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수천년간 느껴왔던 그 Aemaeth.
이것을 분석하기 위해 역추적하다보니 생각보다 가까운 과거에서 멈춰설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