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회색전략의 분석



Chapter 1에서 다뤘던 회색전략을 실용적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체스판 위의 Black 과 White를 둘 다 패배시키고 싶은 장외의 우리.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헷갈리지 않도록 다음과 같이 가정하고 분석을 시작해야겠습니다.


Black = DIRECTORS , 제수이트
White = MANAGERS , 메이슨리



여기서 Black은 White보다 지능적으로 앞섭니다. 

Black 은 White를 완전히 때려눕히기 위해 최강의 수를 준비합니다.


종횡과 사선으로 전부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말이 게임판 위에 나타났습니다.

'나'는 Black의 이 강력한 말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Black은 '나'를 선택했고, '나'는 게임판 위에 나타나 White를 긴장시킵니다.



그리고 White의 말 중 가장 강력해 보이는 몇 개를 불능화 시켜버립니다. White는 좌절합니다.

그리고 '나'는 시기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회색전략이 시작되는 그 타이밍을 말이죠. 


타이밍이 온 그 때, '나'는 이면 속에서 Black을 타격할 수 있는 White로 전향합니다.


그림자 밖에서의 '나'는 White와 대치하는 A의 위치였지만 그림자 속에서의 '나'는 Black과 대치하는 B의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Black의 종횡과 사선으로 전부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말이었던 '나'는 어느 새 White에서 그 역할을 수행합니다.

자신들의 '강력한 말'을 잃어버린 Black은 White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하다가 심각한 손상을 입고 퇴각합니다. 

Black의 거의 대부분의 시설은 White가 장악하게 됩니다.



White는 열광하며 '나'를 영웅시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그들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 그럼 메이슨리만 이긴 거잖아! 이게 어떻게 둘 다 패배시키는 전략인 건데? 
상식적으로 그 뒤엔 수가 줄어든 메이슨리를 밟아야 할 거 아니냐? 그래야 둘 다 죽지! "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게임이 어떻게 진행되었나 보십시오.

비록 처음보단 그 수가 많이 줄었지만 '나'는 여전히 White의 말들에 둘러 쌓여있습니다. 

이대로 '나' 혼자, 남아있는 White에게 대적하겠습니까?

Black 편인 척 White를 밟다가 White로 전향한거야 전략상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그 상태에서 다시 White를 공격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곧 White는 Black 과 White 둘 이외의 세력이 있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들은 장외의 '우리'의 존재를 알아서는 절대 안됩니다. 

여기서 White들을 향해 대적할 수 있는 조건은 '나'의 힘이 그들을 '압도'할 수 있을 때이거나, 혹은 후일을 위해 'White'의 인지범위 내에서 배신을 해야한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White가 이해할 수 있는 어떤 명분이 있어야 White를 다시 대적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White가 '나'의 이해되지 않는 배신에 격분하여 '나'와 전투를 치르고, 승리하게 된다면... 

Black 말고 또 다른 세력이 있다고 판단, 장외의 '우리'를 적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고, 우리에게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봐도 딱히 좋은 점은 없습니다. 아직 많은 수의 White와 '나'와의 전투에서 내가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그 희생자는 매우 많을테니까요.




역사적으로 몇 번이고 반복되었던 이런 DIRECTORS에 대항한 MANAGER CLASS의 단편적인 승리들,



Black에 대항하는 White에게 장기적으로 그들이 Black에게 끊임없이 저항할 수 있는 자신감과 동기를 심어주게 됩니다.


기적적으로 갑자기 적들을 무찌르는 인물이 나타나 자신들의 승리가 보장이 되는 이 상황, 

장외의 인류(반도의 경우 本邦人)란 그저 그들에겐 '노예'이므로 이 게임판에 올라왔을 리가 없다고 그들은 인지편향적으로 각종 승리들을 해석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런 급작스러운 승리 전개가 마치 '그들이 섬기는 신'의 축복으로만 여기게 됩니다. 

마치 1917년의 그 때처럼 말이죠.


그리고 이것은 몇 십년에 걸쳐 그들에게 '빅데이터'가 되고, '절대적인 진리'라고 그들에게 각인되어 버립니다. 

White에게 있어 '장외의 우리'는 영원불멸한 Non-Player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인지할 수 없는 영역이란 바로 이런 흐름에서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번에도 '신'과 계약을 해냈다.

- DIRECTORS(148)와 단절을 선언한 MANAGERS, a.k.a 일루미나티 (78)





따라서 '장외의 우리' 캐릭터인 '나'는 White 잔여세력을 압도한다는 명제가 성립하기 전까지는 


White가 계속 착각의 상태에 빠질 수 있도록 유지한 채로 턴을 종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65

제수이트에 선전포고를 한 박정희 대통령,

회색전략의 시작



때는 1965년으로 돌아갑니다.

MANAGER 계층의 이승만.

그리고 그의 '민족'관료들은 제대로 된 나라를 이제서야 가진 줄 알았으나 어느 새 컨트롤도 빼앗기고, 자신들 민족의 영도자이자 왕이었던 이승만까지 사망하게 됩니다.


이민족 Korean 관료세력들의 비참한 말로가 눈에 보이는 듯 하군요.




근데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같은 시기, 대략 1960년대 중반부터 국내의 천주교 성당들이 극심한 재정난을 앓고 있던 겁니다.

심심하면 성당 내부로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고리대금업자들(ㅋㅋ)에게 성직자들, 사제들 할 것 없이 매일같이 발길질 당하고 얻어맞고 있다며 울분을 호소합니다.


<추기경 정진석> 에서 밝혀지는 1960년대 후반까지의 국내 천주교의 상황
- "매일같이 빚쟁이가 몰려와 수없이 구타당하고 발길질 받았다"


신기합니다. 

제수이트가 준비한 군부 쿠데타가 성공을 했음에도 타격을 입은 건 이승만계열 따까리들 정도였고 정작 중요한 반도 국내에서의 천주교의 운영 실태가 막장이라니요.


도대체 누가 천주교의 돈줄을 말라버리게 한 걸까요?

1967년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으로 물러난 서울대교구장이 있었습니다.

노기남(盧基南) 대주교. 1942년 바티칸에서 주교로 임명되었던 최초의 Korean 이었습니다.

근데 이런 '최초'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노기남에 대한 현재의 취급은 꽤나 박합니다.

무려 '친일인명대사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기 때문입니다. ㅋㅋ

보통 좌익들이 어떤 인사를 공격할 때는 '친일'을 무기로 자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하는 걸까요? 혼란스럽습니다.


노기남이 바티칸에서 임명을 받은 시기를 살펴보니 힌트가 있었네요.

바로 비오 12세 (1939~1958 재임) 로부터 주교 임명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MANAGER CLASS가 DIRECTORS를 밀어내고 전세계를 지배했(다고 착각했었)던 그 때 그 시절, 

MANAGER 교황인 비오 12세가 임명했던 인사가 어느새 DIRECTOR 교황인 바오로 6세의 천주교에 트롤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흐름 속에 '거지'가 된 국내의 천주교는 심심하면 빚쟁이들에게 구타당하느라 문 걸어잠그기 바빴습니다.

그리고 이런 천주교의 혼란을 틈타 1968년, 드디어 이민족들로 구성된 국내 MANAGERS는 기어코 DIRECTORS의 소중한 섬인 '밤섬'을 폭파하는 데 성공합니다.


[밤섬에 대한 분석 - 트위터 링크]


1968년, 밤섬 폭파 사건 당시 心田이라는 '호'를 가진 김현옥 서울시장이 밤섬을 폭파해 버린 것인데, 제수이트를 등에 업었던 대통령측에서 이를 막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당시는 '군부'가 득세하던 시기입니다. 아직 유신헌법 이전의 시점이라지만 제 아무리 서울시장이라도 대통령 눈치도 안보고 저렇게 폭파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 섬은 '밤섬'인데 말이죠.


왜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당시 그것을 수수방관 했을까요?


이상한 점은 더 이어집니다.

바로 김수환 추기경의 등장이 이 시점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김수환 (金壽煥) 추기경. 1960년 서강대를 설립한 제수이트 신부 '테오도르 게페르트' 를 은사로 뒀다. 


다시 DIRECTORS의 품으로 돌아온 바티칸, 바오로 6세는 1966년 6월 15일에 천주교 마산교구를 신설하고 그 교구장으로서 당시 신부였던 김수환을 임명합니다.

그리고 2년도 안된 1968년 4월, 서울대주교로 임명을 받은 김수환은 1969년 3월 28일에 47세라는 나이(최연소)로 추기경으로 서임됩니다.


와, 엄청난 속도의 승진입니다. 노기남 대주교를 비롯해 국내 천주교에 남아있는 MANAGER 세력을 어떻게든 견제하기 위해 처음부터 DIRECTOR 키드로 키워진 김수환에게 출세가도를 열어줬던 거군요.


추기경이라는 타이틀의 힘으로 천주교 Korea Branch 부장이 된 김수환은 그 이후부터?

김수환은 추기경으로 서임된 이후 시국미사, 불교/개신교 인사들과 회동을 하며 제수이트의 힘으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 정권에 온갖 대항을 시작합니다. 1971년 김수환이 진행한 성탄절 미사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정황상 1966년부터 없던 벼슬자리까지 만들어내며 김수환을 키우려고 애썼던 바티칸 꼬라지를 보니, 이미 그 시점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팀 이적'은 제대로 이뤄진 모양입니다.


1966년을 '팀 이적'이라고 볼 수 있다면, 1965년(이승만 사망 시점)까지는 MANAGERS를 적대하던 기간이었던 거군요.

本邦의 가장 큰 적이었던 이승만의 비참한 말로, MANAGERS의 우두머리가 제거되자 남은 MANAGERS 잔당들을 박정희 대통령께서 잠시 이끌기 위해 이적을 하셨던 걸로 비춰집니다.




회색전략이 시작된 거군요.





1970 ~ 1974

제수이트와의 차가운 냉전


이런 배경을 가졌기 때문에, 기존의 Korean 관료 세력들에게 있어서 박정희 대통령은 '아르테미스 신앙'에 따라 자기들을 도우러 내려온 존재로 보였을 겁니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제수이트의 편으로 나타나 자기들을 토벌하는 듯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어느 순간 스탠스를 180도 바꾸어 자기들을 지원하며 제수이트를 토벌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미 패배해버린 本邦사람들'을 위해 나타났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MANAGERS 계열의 제수이트였구나! 라는 어떤 단편적인 해석에 급급할 뿐, 박정희 대통령의 진짜 의도는 그들이 인지할 수 있는 영역 밖입니다.



근데 이런 모양새와는 다르게 박정희 대통령의 영애셨던 박근혜 대통령의 학력은 기이합니다.

1964년부터 성심여중 - 성심여고를 나오시고 1970년에는 서강대를 입학하여 무사히 졸업합니다.

누가봐도 전형적인 천주교 미션스쿨만 나오셨던 박근혜 대통령.

게다가 그런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히 손찌검을 못했던 제수이트.


바티칸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스탠스만 보더라도 제수이트가 박근혜 대통령을 인질로 잡아 협박했을만 합니다만, 이상하게도 박근혜 대통령께선 무사히 졸업하게 되시고,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MANAGERS(反유대계)의 지원하에 1972년 유신헌법까지 공포하게 됩니다.


제수이트는 왜 박근혜 대통령을 놔뒀어야만 할까요?

먼저 생각을 좀 해보려고 합니다.


정치가의 자제의 진학이란 엄청난 정치적 메시지를 포함합니다. 

특히나 군부를 통해 집권하여 권력을 공고히 해가던 박정희 대통령이셨으므로, 그 메시지의 무게는 다른 정치가들은 명함도 못 내밉니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께서 육영수와 결혼을 하였던 곳도 대구 계산성당이었는데, 육영수는 불교로 알려져 있죠.

천주교 신자 입장에선 이미 박정희 대통령이 천주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소문이 나있었을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등장은 군중의 환호를 받도록 설계되었었고, 그러한 배경으로 영애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천주교 미션스쿨에 진학을 시킴으로서 일반인 천주교도들의 환호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10.26 사태로 서거한 박정희 대통령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천주교 신도들. 만일 바티칸이 작심하고 박정희 대통령을 공격했다면 천주교 신도들의 이탈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박정희 대통령은 대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천주교도들의 지지기반이 확립된 상태였으므로 DIRECTORS의 공격은 그 규모가 매우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티칸이 반도에서 자신들의 교세와 위치를 지키기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 대통령을 대놓고 공격해서는 안됐던 겁니다.

김수환이라는 '추기경'이자 새로운 "아이돌"을 만들어 대항하려 했던 바티칸의 전략이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기란 어렵습니다.

놈들은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겁니다.




1974년 8월 15일

암살 미수 사건



결국 시간은 흘러 1974년 박근혜 대통령께서 서강대를 졸업하시고 그르노블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있던 어느 날, 사건은 발생하게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망하게 된 것은 퍼스트 레이디였던 육영수(陸海英修)였습니다.



육영수가 세운 육영재단의 1대 이사장인 곽상훈은 1960년대 초에 김구기념사업협회 회장을 지냈던 인물입니다.

5.16 당시 김구의 차남인 김신은 군부에 적극 협력하는 인물이기도 했는데, 김구는 암살 당시 천주교식 세례성사와 종부성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김구는 현재 좌익들에게 있어 '진정한 우익'이라는 뭐 이상한 타이틀을 가지고 추앙을 받고 있죠.

MANAGERS였던 이승만과는 다르게요. 



말이 안통하게끔 '설계된' 북쪽 대표단과 자꾸 협상을 해서 남북 총선거를 주장했던 김구... 

그런 상황이었다면 당연히 여러 정치깡패들로 인해 분열된 남쪽 정부는 북쪽에 비해 당연히 소득이 적을 겁니다.


애초부터 처음 계획에 남북한의 분단이 명시되어 있었을텐데, 어째서 김구는 반공주의라는 간판을 걸고서도 비현실적인 주장을 되풀이했던 것일까요.

갑자기 돌연 바뀐 태도에 이승만은 김구와의 절친한 인연을 버리고 그를 손절합니다.

또한 그의 뒷배경에 천주교가 있었으나 비오 12세 계파가 아닌, 당시 바티칸의 야당(DIRECTORS)의 입김이 김구에게 불고 있었음을 직감하고선, 그를 암살해버리기까지 합니다.

김구는 DIRECTORS 편이 맞는 것 같은데, 왜 육영수는 그런 김구를 기념하는 사업을 진행했을까요?

박정희 대통령을 뒤에서 조종하게끔 유도하는, 일종의 핸들러 역할이었을까요?


 


그렇다면 박정희 대통령과 결혼을 한 육영수.

박정희 대통령께서 이런 움직임을 모를 리는 없으셨을 겁니다.

DIRECTORS편인척 나타나 MANAGERS의 우두머리를 제거해버리고 남은 따까리들의 편으로 '이적'을 하며 회색전략까지 시작했으니, 분명 DIRECTORS 색깔이 드러나는 육영수 입장에선 박정희 대통령의 행보가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그런 정황 중에 갑자기 박정희 대통령을 노렸던 암살범의 '실수'로 육영수가 피살 되었다?

MANAGERS가 벌인 일일까요? 누가 그 배후에 있었는 지를 추측해 봐야겠습니다.



먼저 범인인 문세광. 

잽스식 이름으론 南條世光(난죠 세이코우).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在日)출신. (이명박과 같은 출신 성분인데?)

처형일이 12월이었으니, 사건 발생일로부터 4개월 정도만에 처형이 되었군요.

잡힌지 얼마 안되어 정보를 별로 얻어내지도 못한 상태로 빠르게 처형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암살하려했던 암살범에 대해 알아내야할 게 많았을텐데... 사형을 이렇게나 빠르게?


뭔가 뒷 배경을 감추려는 듯한 느낌이군요. 


근데 이런 문세광에 대한 심문 내용 중에 특히 이상한 내용이 하나 보입니다.

바로 '자칼'입니다.


꿋꿋하게 입을 다물고 있던 문세광은 '자칼의 날'에 등장하는 자칼이 당신이냐는 심문관(당시 김기춘)의 물음에 곧바로 화답하며 입을 열었다고 하는데...


출처 : 나무위키, "문세광"

이건 누가봐도 암구호 아닌가요?

자칼의 날에 나온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 프랑스 극우단체 OAS의 사주를 받아 샤를 드골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하는 살인청부업자 자칼과 프랑스 경찰 간의 첩보전.


샤를 드골은 달러본위제에 반대하며 금본위제를 주장했고, 미국(유대계) 일변도의 서구 질서 확립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던 자였습니다.

DIRECTORS가 굉장히 싫어했을 만했던 드골, 그리고 그런 드골을 암살하려 들었던 자칼.

문세광은 그게 바로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DIRECTORS 편임을, 나아가 제수이트의 편임을 드러낸 부분인데 정작 엉뚱한 타겟이 사망했으니, DIRECTORS 쁘락치(안동-거제, 여왕년 라인)였던 김기춘 입장에선 환장할만 합니다.

팀과 타겟이 불일치하는 상황, 암구호까지 깠건마는 사건은 오히려 더 미궁으로 흘러갔습니다.


게다가 본인이 한 게 맞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 분명 MANAGERS에서 장난질을 친 모양입니다.

일본 경찰조차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 이대로 문세광을 살려뒀다간 분명 사태가 더더욱 꼬이고 말 겁니다.

DIRECTORS 쪽이나, 교묘하게 트릭을 친 것으로 의심되는 MANAGERS 쪽이나 둘다 문세광을 살려둬서 이득이 될 것은 없어보이는군요.


둘의 기묘한 합의에 따라 문세광은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체포되어 형이 집행되기까지의 사진에서 나타난 문세광을 보면 살이 점점 쪄가는 게 보이는데 아무래도 자기가 사형이 될 것이라곤 여기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실권을 쥐고 있는 MANAGERS의 입김을 받았으니 자신을 구하려고 할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하긴 그렇게 믿어야겠지요. 사식도 넣어주고 사형이 진짜 집행되지는 않을 것이라 누차 강조를 해줘야겠죠.


그래야 죽는 날까지 비밀을 간직한 채 잘 복역할테니까요.






퍼스트 레이디 대행

그리고 DIRECTORS와 함께했던 박근혜 대통령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에서 불어 어학연수를 받고 있었던 영애, 박근혜 대통령은 초유의 사태로 인해 5개월만에 어학연수를 중단하고 반도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육영수라는, 박정희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DIRECTORS의 Entity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이때부터 퍼스트 레이디를 대행, 정치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DIRECTORS였던 제수이트는 이런 박근혜 대통령의 존재를 어떻게 컨트롤 하려 했을까요?



저는 최태민 이라고 불리는, 출신 불명의 핸들러를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 배치함으로서 그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조종하게 둠으로서 제수이트가 박근혜 대통령에 딱히 해코지를 가하지 않고, 그 존재를 용인했다고 생각합니다.


최태민에 대한 각계 반응은 하나로 수렴합니다. "라스푸틴". 옆에서 정신적으로 조종하는 자였다고 하죠.

최태민과의 관계를 청산하라며 권했던 신군부를 비롯해,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의 정부관계자들도 박근혜 대통령을 멀리했다고 합니다.


처음 박정희 대통령의 반응은 '뭐하는 새끼지' 였지만, 어느 순간 최태민의 존재를 용인하게 됩니다.

최태민에 대한 중앙정보부의 보고서를 받은 박정희 대통령은 직접 최태민을 대동하여 김재규 정보부장과 동석한 상태에서 심의를 진행했습니다.
모든 보고서에서 최태민은 위험인물(DIRECTORS)로 간주되었으나 박정희 대통령은 이런 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최태민이 세운 구국봉사단에 박근혜 대통령을 총재로, 최태민은 명예총재로 임명합니다.


박정희 대통령께선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도 DIRECTORS 편에 서는 듯 하군요.

육영수 피살 이후, 처를 잃은 남편의 복잡한 심경 이라는 배경이 그럴싸한 논리적 설명이 되어줍니다.

(실제로도 그러하셨을 거라 생각은 합니다만)


사실 암살 미수 사건 이후 드러난 이상한 일처리 방식에서 박정희 대통령께서 눈치채실 만합니다.

굉장히 빨리 처형된 문세광을 보면, MANAGERS나 DIRECTORS나 조기에 사건을 종식시키고 싶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대통령 주변의 MANAGERS가 육영수 피살과 아예 관계가 없었더라면, 문세광을 사형시키기는 커녕 계속 고문을 하면서 정보를 캐내려 들었을 겁니다.


따라서 

" 박정희 대통령께선 자신의 주변인들인 MANAGERS를 향해 육영수 암살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었을 것이다. "

라고, MANAGERS는 생각했을 겁니다.

즉 박정희 대통령의 MANAGERS에 대한 대적이 MANAGERS가 납득 가능한 인지범위 안에서 이뤄졌다는 겁니다. DIRECTORS와 MANAGERS를 동시에 대적, 이해할 수 없는 배신을 한다면 GRAY TEAM인 本邦人 세력이 존재함을 감지해버리고 말겠지요.

 

 (물론 실제로도 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으니 처를 잃은 슬픔이란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개인적인 '복수심'이 이후 벌어질 진짜 파워게임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포장지가 되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따라 MANAGERS 였던 김재규는 중앙집권적인 현 정부가 DIRECTORS 편으로 기운다면 MANAGERS인 자기들의 미래가 없어진다고 판단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지율도 높았던 만큼, 하루 아침에 갑자기 反박정희 정권 세력을 키워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MANAGERS의 사이가 틀어졌다고 대외적으로 공표하면 안되니까요. 

DIRECTORS의 공격이 거세어질테고 정치적으로 정권을 교체하다가 DIRECTORS의 트릭에 의해 MANAGERS도 같이 실각될 위험도 큽니다. 


MANAGERS 입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영원히 MANAGERS의 영웅으로 남아야만 합니다.

자신들의 죄를 감춰야 하는 것 또한 덤이죠.


따라서, 

1. 급작스러운 유고사태인 10.26 암살사건을 일으킨 후, 

2. 비상정국이라는 핑계로 DIRECTORS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이전에 군부대들을 움직였고(12.12), 

3. 이를 통해 MANAGERS들이 집합해있던 신군부가 DIRECTORS를 제치고 정권을 장악하도록 도왔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MANAGERS가 컨트롤을 확보하는데에는 성공했습니다만...

DIRECTORS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 또한 박정희 대통령께서 서거한 배경을 눈치챘고, 이에 따라 전국적인 시위를 조직합니다.



1980년 5월, DIRECTORS이자 제수이트가 가장 크게 세력을 점하고 있던 광주에서 신군부를 맹렬히 반대하기 시작합니다. 무려 폭력까지 동원하면서 말이죠.

결국 1985년을 기점으로 전세계적인 MANAGERS 헤게모니의 종식 및 NWO 시스템 수립에 따라 反유대계, 저항파 MANAGERS였던 신군부 체제도 1988년을 끝으로 몰락하게 됩니다.


그 핵심인사였던 김대중이 나중에 박근혜 대통령과 친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박근혜 "딸로서 사과드린다" DJ "난 그 말이…"

https://www.joongang.co.kr/article/9144758#home


이후 신군부가 정식으로 정권을 장악하자 청와대를 떠나게 된 박근혜 대통령.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은 상태로, 정치계의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DIRECTORS의 입장에선 MANAGERS를 지지하는 지지기반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올 수 있는 강력한 잠재적 무기가 되었죠.

이를 잘 나타내는 대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노태우 정권에서 조사한 박근혜 대통령의 당시 상황.

최태민은 "몇년만 참고 기다리면 '여왕'이 될 것이므로 친인척등 외부인을 만나면 부정을 타게 되니 접촉을 피하라" 라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자신들에게 홀려있어 조종하기 쉬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이 되게 만들어주겠다는 DIRECTORS의 의도를 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는 이면의 목적이 따로 있었습니다.)


NWO, DIRECTORS로부터 선택을 받았으니 정계로 진출한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는 날개를 답니다.

1997년 12월에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나서 3개월만에 치뤄진 대구 달성의 재보궐선거에서 당선, 입당한지 4개월만에 국회의원이 되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후 2000년 11월에는 한나라당 부총재가 됩니다.

입당한지 3년도 안되어 보수정당의 핵심인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좌파쪽의 지지도가 더 높았기 때문에 이런 보수정당의 위기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유일한 선택지로 떠올랐지만, 17대 대선에서 이런 움직임이 한차례 꺾입니다.


NWO 일변도로 흘러가는 체제 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권을 잡게 된다면, 기존의 항명했던 MANAGERS와 그 세력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들은 NWO의 핵전쟁 계획에서 살아남는 세력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이명박은 NWO에게 자기들 MANAGERS가 선택되도록 갖은 아양을 떨었습니다.

이명박 주도 하에 UAE에 아크부대라는 BlackOps Unit을 파병하여 이스라엘, 유대계 자본의 하청을 대신하게 한 것 또한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친박계와 친이계로 나뉘어 살벌했던 지난 17대 대선은 MANAGERS 세력이 (그들 눈에는) DIRECTORS로 보이는 박근혜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명박의 이런 행동은 어디까지나 생존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추측하는데, 왜냐면 MANAGERS의 최종적인 봉기 PHASE인 현재, 그는 NWO 체제 인사들이 아닌 尹 정권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기 때문입니다.

https://imnews.imbc.com/news/2023/politics/article/6483774_36119.html



처음부터 MANAGERS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작자였군요. 괜히 NWO 시절의 북한이 '쥐새끼'라며 비난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을 만한 놈이 아니다 이거군요.


Korean (Corean 아님) MANAGERS가 NWO에 결탁하는 1순위 세력이 되지 못한다면...

구심점을 잃은 MANAGERS는 제수이트 미션 스쿨부터 시작하여 DIRECTORS 계열 최태민 일가의 입김을 받는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제대로 철퇴를 맞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명박은 분주히 親 유대정책인 UAE 파병을 필두로 오바마와 사이를 좁히며 親美, 親NWO 정책을 펼치며 선택을 받는 듯 하지만... 


그 끝에는 굉장한 레임덕이 오고 있었습니다. 


보수정권이 단합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인 '박근혜 대통령'으로 MANAGERS의 지지가 기울도록 말입니다.

이명박의 비즈니스 외교인지 뭔지, 딱히 NWO 그룹에겐 별로 어필이 안 되었나 봅니다.

반도의 MANAGERS는 DIRECTORS에게 있어 本邦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는 모양이군요.



→ Chapte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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